열아홉 사랑고백 하던 날 녹음해서 줬던 노래들
때는 2000년... 고3 이었던 난, 동네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
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를 어떤 여자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
거의 반 년간 독서실을 다니면서 당연히 말 한 마디 못건냈었고
말을 건내보기는 커녕,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
지나다니면서 가끔씩 보는 것이 전부..
근데 그게 너무도 설레고 또 좋았었다
또 마음 한 편에는
계속 이 독서실을 다녀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
또 다른 마음으로는, 저 사람이 만약 수험생이라면
수능 이후로는 더이상 못보겠구나 라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고
뭔가 저 사람에게 당당하게 고백하기 위해서는
일단 좋은 대학에 붙고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
결과적으로 썩 좋은 대학에 합격하진 못했지만
그래도 이를 계기로 성적의 반등을 이루어
수능성적 반 53명 중 9등을 하는 쾌거를 이루긴 했다
물론 운이 정말 많이 따라줬지만...
나는 그녀가 나보다 3살이나 더 많다는 사실을
고백하기로 마음먹은 당일에야 알게됐다
독서실 총무형이 알려줬는데
그날은 다름아닌 수능시험 바로 전날이었다
총무형은 중앙대 공대를 다니는 대학생이었는데
나보고
"아이고 어떡하니 세살이나 차이나서... 힘들겠다 ㅎㅎ"
라고 말했었던 것 같다
그런데 참 웃겼던게
내가 고백할 사람이 저 사람이라고 총무실 밖으로 지나가는 그녀를 슬쩍 가르켰을 뿐인데
이름부터 신상까지 쭈욱 자연스럽게 나오더라
나중에 알고봤더니 작업성 멘트를 몇 번 날렸다고 함..
여튼 그날 내가 준비한 사랑고백 선물은
작은 꽃바구니와 합격을 의미하는 엿 (그 때는 잘 찍으라는 의미의 도끼엿이 유행했던 것 같음)
그리고 저 위에 보이는 누더기 같은 노래 녹음 테이프
마지막으로 시험 잘보라는 쪽지에 휴대폰 번호를 함께 적어 꽃바구니 안에 숨겨놨었던 것 같다
노래 대부분은 중학교 때 부터 라디오에서 직접 녹음했던 애장곡들로
이걸 받아서 들어본 그녀는 '어린애 치고 나름 감성이 깊은 애구나' 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
여튼 그 날 거의 10시 까지 총무실에서 기다렸으나 (거의 8시 부터 뻗치고 있었던 것 같음. 심지어 수능 전날)
그녀 열람실 자리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
너 내일 시험봐야 되니까 선물은 내가 전해줄께 얼른 들어가 하는 총무형 말을 듣고
어쩔 수 없이 난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 선물을 맡기고 집으로 왔다
자려고 누운 시간이 대략 11시 정도였는데
전화벨이 울린다
처음 보는 전화번호..
그녀였다
아주아주 밝은 목소리로
누군지 모르지만 너무 고맙다. 시험 잘보고 수능 끝나면 밥 한 번 사주겠다
라고 했었던 것 같다
빙그레 웃으며 난 곧 잠이 들었고
다음날 수능은 그럭저럭 큰 사고 없이 치뤘던 것 같다
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, 무척 추운날 밤
난 그녀와 처음 단 둘이서 만나게 되었다
밥을 사준다는 약속 때문이었는데
아무래도 19살과 22살의 만남이 순탄할 리는 없었고
알고보니 군대간 남자친구가 있었던 그녀
그 다음해 1월 정도까지는 간간히 그녀가 알바하던 커피숍에 놀러가기도 했었고
한 번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
그 영화는.. 니콜라스케이지 주연의 The Family Man
나의 풋풋한 사랑은 과거에는 비록 동경에 그쳤지만
현재에는 사랑이 되었으며
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으로 남아있을 것이다
한 번도 저 노래들을 다시 다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
오늘 이 아래에 쭈욱 유튜브 펌으로 곡들을 나열하여 한 번 들어볼까 한다
SIDE A
엄정화: 하늘만 허락한 사랑
양파: 소유
이소라: 처음 느낌 그대로
박정현: 영원까지 기억되도록
김혜림: 멀어진 지금
양파: 천사의 시
정여진: Too Far away
박정현: P.S I Love You
김건모: 아름다운이별
박진영: 너의 뒤에서
에반게리온 OST: 리츠코의 Theme
SIDE B
이승환: 다만
김건모: 아침풍경
COOL: 약속
카니발: 거위의 꿈
이현우: 요즘 너는
SES: 비가
서지원: 내 눈물 모아
정재형: 세상의 모든 이별
엄정화: 후애
김장훈: 나와 같다면
박상균: 내일부터 나도 웃을 것 같아
??? 으로 표시된 노래는 나중에 찾아보니 위와 같은 노래였음.. 찾느라 정말 힘들었던
여튼 김형석 작곡가의 노래를 대부분 좋아했던 나의 선곡은 지금 생각해보니 우울 그 자체.. 듣고 우울증 걸려라 이건가
지금도 간혹 이 이야기 꺼내면 그때 그 사람과 동일인물 맞느냐는 농담도 주고 받고 함
또 간혹 크게 싸울 때 마다 꼭 이 소중한 기억을 꺼내보는데
죽는날 까지 함께 갈 사람이라는건 언제나 변함없는 사실임
'나의이야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속초아이(2024년2월) (0) | 2024.02.21 |
---|---|
간만에 먹어본 농심 우육탕 큰사발면 (0) | 2024.02.21 |
소개팅 어플 순위 정말 솔직하게 알려드려요 (1) | 2017.06.26 |
서교동 카페 퓨즈커피 방문기 (0) | 2017.06.23 |
소개팅 어플 후기 - 세이프와 우리의 첫 만남 (0) | 2017.06.16 |